[잡스앤]아들 망칠 뻔한 '헬리콥터 아빠', 반성문을 쓰다.

선행학습 강요했던 최준영씨, 자녀 교육 실패기 담은 책 펴내

토플·美 대입 시험 만점 아들 우울증·대인기피증 걸려 돌아와

"아들 선택 지지하며 기다려줄 것"

"영재교육, 선행학습을 신봉했던 '헬리콥터 아빠'(헬리콥터처럼 자식 주변을 맴돌며 일거수 일투족을 챙기는 아빠)가 아이 인생을 망칠 뻔했습니다."

최정혁(29)씨는 대기업 임원 출신인 아버지 최준영(58)씨의 자랑이었다. 21개월부터 소리 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중2때는 국내 최연소 토플 만점자가 됐다. 고1때 미국 대입시험인 ACT 만점을 받았다. 일간지와 여서지가 아들의 쾌거를 보도했다.

상황은 미국 대학을 졸업한 정혁씨가 2012년 군 복무를 앞두고 한국에 돌아오면서 바뀌었다. 2년 만에 아들을 만난 최준영씨는 깜짝 놀랐다. 아들은 말을 계속 더듬었고,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영재'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었다.

아버지 최준영(오른쪽)씨와 아들 정혁씨가 마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최준영씨는 스파르타식 교육 탓에 아들이 우울증을 앓고 난 뒤 "자식의 선택을 지지하고 칭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 성형주 기자

최준영씨는 말과 셈이 또래보다 빨랐던 아들 정혁씨가 '영재', 더 나아가서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중3 수학까지 선행학습을 마쳤다. 잠시 미국에 살 때는 수학 경시대회를 휩쓸었다.

그 뒤에는 '헬리콥터 아빠' 최준영씨가 있었다. 직장일이 아무리 바빠도 학원에서 아들 데려오는 일은 그의 몫이었다. 토플 문제집을 하루 50페이지씩 풀게 한 사람도, 초등학생이였던 아이에게 중학 수학 교과서를 풀라고 과제를 냈던 사람도 아버지 최씨였다. 그는 회사에서 출세할 기회였던 중국 상하이 지점장 자리를 제안받고도 "아들이 막 고교에 진학해 뒷바라지가 필요하다"며 거절했다. 그는 "내 야망을 버리고 아들의 미래를 택했다"고 했다.

최준영씨는 아들의 소극적인 성격도 고치려고 했다. 그는 "성격만 조금 고치면 완벽한 아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집착으로 번졌다"고 했다. 그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는 아들을 보고서도 안타까움보다는 분노가 더 컸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공들인 선수인데, 이렇게 망가져서 나타났단 말인가'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아버지 탓이라는 의사 진단을 받고 그는 충격에 빠졌다. 의사는 "미국 유학 중에도 아버지에 의해 이메일 등으로 원격 컨트롤을 당하면서 아들이 시행착오를 겪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키우지 못했다"고 했다. 최준영씨는 "칭찬에는 인색하고 다그치기만 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며 "이르만 교수나 학자가 되라는 꿈을 강요하지 않고 아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법을 그때부터 배웠다"고 했다.

최씨는 이런 실패기를 담은 책 '백점 아들 육식동물 아빠'를 최근 펴냈다. 그는 인터뷰에 아들 정혁씨와 함께 나타났다. 한국에 돌아온 후 지난 5년간 정혁씨는 공군 통역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결혼도 했다.

SAT 학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생활비를 벌고, 본인이 원하던 대로 인디밴드에서 드럼을 친다. 온라인 강의를 통해 최신 IT 기술을 익히며 취업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아버지도 아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아들 정혁씨는 "지금처럼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했다. 머쓱하게 손 잡고 나타난 부자(父子)는 닮은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준영씨는 "부모의 집착이 아이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게 막는다"며 "아이를 인정하고 칭찬부터 해줘야 한다는 걸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출처 : 양지호 기자 / 조선탓컴 / 잡스엔